미야자키에서의 발자국을 더듬어
2017년 8월 ~ 10월 미야자키 후루사토 키즈나 참가자
김기성
아코피아의 미야자키 후루사토 키즈나 프로그램은 이전까지 주로 1개월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지만, 내가 3개월을 신청하면서 마쓰자키 상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해야했다. 너무나 많은 경험을 하였지만, 내가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남겨두고자 한다.
1. 처음 도착한 미야자키
미야자키의 기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미야자키는 일본 내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은 지역이다. 큐슈에서도 남부지역이기에, 전국적으로도 오키나와를 제외하면 제일 기온이 높은 편에 속한다. 식물의 분포도 동아시아 지역과 동남아시아지역에서 나타나는 식물들이 공존한다따뜻한 기후 덕에, 미야자키 현내 휴우가(미야자키의 옛 지명)시에서는 망고나 휴우가 나츠라는 열대지역 과일들도 특산품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일본 내에서도 따뜻한 기후, 아름다운 자연환경, 신화의 발상지 등을 이유로 해외여행이 성행하기 이전에는 국내 대표적인 여행지 중에 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런 기후의 미야자키에 도착하여서는 마쓰자키 상이 나를 맞아주었다. 일본에 가며 휴대폰을 정지하고 갔기 때문에, 마땅한 연락수단이 없었던 나는 ACOPIA를 통해 미리 몇 시에 미야자키 역에서 만날 것인지 정해두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마쓰자키 상이 활동하는 일본 LABO의 모임에 가게 되었다. LABO는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동체적인 다언어 교육과 체험 등을 진행하는 단체로,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교류도 담당하고 있다.
2. 미야코노죠, 신마치농원 생활의 시작
둘째 날부터는 미야코노죠의 농원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8월달의 생활을 시작했다. 신마치농원(新町農園)이라는 이름의 농원으로 4인 가족이 지내는 곳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신마치농원은 WWOOF라는 이름의 단체를 통해 외국인들의 팜스테이를 몇 차례 진행한 농원이었다.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농사일을 함께 할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신마치 농원의 나야 상은 귀농한 젊은 농부로, 농사의 중요성과 의미,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진 사람이었다.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가지, 피망, 오크라 등의 야채들을 지역사회의 가게, 사람들에게 배달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의식주에 있어서의 친환경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이는 나의 가치관과도 잘 맞아떨어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면서 불행해지는 현대인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농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직접 파종이나 수확을 해보면서 그걸 체험하기도 했다. 아침이면 6시에 일어나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제일
나야 상은 이러한 대안적인 움직임에 공감하고, 지역 가두 시장에의 농산품 출품, 지역축제祭り에의 참여, 청장년회 모임을 통한 마을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이 가운데 나야 상의 배려로 나도 지역 시장이나 축제, 청장년회 모임에도 잠시 참여하였고, 언어장벽을 넘어가며 이들과 교류하였다. 재배한 농작물의 배달을 직접 하고 있는 이유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미야코노죠는 분지 지형으로 멀리로는 키리시마 산이 보이고 미야자키 전역을 흐르는 오오요도 강의 중류가 흐르는 곳이다. 아파트가 적은 일본, 그 중에서도 시골인 미야코노죠에서는 논밭과 강, 산이 이루어내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이동하노라면 이런 경치야말로 진정한 보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가끔은 근처의 키리시마 신궁이나 세키노오노 폭포로 떠나 놀기도 했다.
3. 미야자키 시에서의 생활
8월 미야코노죠에서의 생활이 끝이 나고, 미야자키 시내로 넘어왔다. 유메밀크(夢みるく)는 ‘꿈을 꾸다’와 우유의 발음 ‘미루쿠’를 합성하여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의 이름이었다. 이곳은 미야자키 현 내에서 우유를 제조, 판매하는 백수사(白水舎)의 기업이 운영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이곳에서 나는 일주일에 3일, 하루 7시간 근무를 하며 아이스크림 제작, 포장보조 및 손님응대 등의 일을 했다. 높은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아니었고, 9월달 들어 태풍과 함께 비오는 날도 많았기 때문에 바쁜 일은 아니었다. 종종 내가 한국인임을 소개하고 일본어로 대화하면, 일본어를 잘한다는 칭찬이나 ‘힘내세요’라는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난 학생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 몸이 다쳐 건강한 유제품을 찾는 아저씨, 지역 방송국 아나운서 등 다양한 일본인의 군상(群像)을 관찰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계산대에 서서 계산을 하고 응대를 하며 사용하는 경어 중심의 일본어도 어느 정도 숙달이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교류협회에서 비즈니스 일본어 책을 빌려서 외우고 말해보는 작업을 반복했다.
미야자키 시에서 유메밀크에 출근하지 않는 동안은 국제교류센터의 일본어 연습회에 나가거나, 혼자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쓰자키 상께서 자전거 빌릴 곳을 알아봐주신 덕택에 조금은 자유롭에 움직일 수 있었다. 일본은 전체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학교, 직장 등에 다니는 인원이 많고, 미야자키는 그 중에서도 평지가 많아, 출퇴근 시간의 교차로에는 항상 자전거가 붐볐다. 그 밖에도, 국제교류센터에서의 일본어 연습회, 한국어 강습, 고분군 관련 번역작업, 현립도서관에서의 자원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지만, 다 쓰자면 책 한권이 나올 것 같기에, 우선 이만큼 적어두고자 한다.
4. 마치며
이번 미야자키 후루사토 프로그램을 통해 정말로 귀중한 경험을 하고 왔다. 주된 목표는 일본어 회화 연습을 통해서 일본어를 숙달하는데 있었고, 수없이 많은 대화의 기회 속에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다. JLPT N1 수준의 일본어를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일본어로 발화하고 생각하고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시험을 위한 공부, 일본 내에서의 지속적인 공부는 숙달에 있어 엄청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접근뿐 아니라, 일본인들과 만나 그들의 속마음과 어느 정도 소통했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일본인들의 일상적인 문화에서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첨예한 문제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모든 본심을 내가 마주할 수는 없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일본어 실력, 그들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마음가짐, 보다 적극적인 다가서기를 통해 가능한 한 그들의 본심에 다가서려 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개인적인 아쉬움은 질문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갔다는 점이다. 평소에 일본을 공부하면서 일본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은 있었고, 특히나 위안부나 천황, 독도, 반일-반한감정에 대해서는 서로 문답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저희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공부한 어떤 의제들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들의 보다 기저에 있는, 이를테면 주변의 사회나 가정, 문화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보다 적절한 질문을 준비해갔으면 좋았으리라. 앞으로도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그려가고 또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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