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주희입니다.
제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오세아니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적극적인 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하던 중, 운 좋게 한국으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아시아학이라는 전공을 택하며 동아시아와 관련한 많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수많은 기회들 중 제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고, 가장 뜻 깊었던 활동은 단연 한일포럼이 주최하고 코리아플라자히로바가 주관하여 실시한 프로그램인 ‘국내 거주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서포터’입니다.
저는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을 무렵, 우연찮게 대외활동을 알아보던 중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활동이라는 점에 흥미가 생겨 한국어 서포터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신청 절차와 간단한 면접을 거쳐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던 분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계신 K씨였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K씨의 한국어는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일상적인 회화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었고, 한국어로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한 토론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의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셨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시사 이슈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으셔서 저 역시도 여러모로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K씨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메르스 사태에 관한 K씨의 입장이었습니다. 작년 한국에서 가장 파장이 컸고, 심각했던 문제였으니만큼 K씨가 관심을 보일 것이 틀림없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K씨의 견해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외국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에서의 삶에 익숙해져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부분까지 세세히 의견을 제시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학생이 된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K씨는 한국의 화장실 문화와 이번 메르스 사태를 연결 지으며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치셨습니다. 외국의 경우,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바로 버리고 물을 내림으로써 휴지통을 일일이 치울 필요가 없어지며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도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는 관습이 남아있어 위생에 좋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나 저의 생각이 전혀 미치지 않았던 새로운 견해임에 내심 충격을 받았습니다.
N씨 역시 기억에 많이 남는 분입니다. N씨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계기로 하시던 일을 그만 두시고 바로 한국어 공부를 하러 오신 열정적인 분이셨습니다. K씨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N씨와는 조금 더 친근하고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실에 구비되어있는 한국어 교재나, N씨께서 직접 구매하신 교재로 공부를 했으나, N씨께서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아 함께 한국어를 조금 더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했습니다. N씨는 한국의 연예계에 관심이 있는 만큼, 그것을 공부와 연결 짓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새롭게 발표된 가수의 노래 가사를 가지고 공부를 하기도 했고,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딱딱한 교재와는 별개로 한국인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공부하다보니 빠른 속도로 회화 실력이 늘어 보람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배운 표현을 가지고 다음 시간까지 예문을 만들어오거나, 작문을 해오는 것으로 실력 향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초보적인 실수가 많아 교정하는 것에 시간이 걸렸지만 한국어 동화책 독서량이 늘어갈수록 그와 같은 실수는 줄어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전혀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문체로 글을 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N씨와 나누었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다른 대화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모르는 사람과의 첫 대면에서 친밀감을 쌓기 위해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아야하기에 고향이나 학력 등 개인정보에 대해 서슴없이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N씨는 한국에서 처음 한국인 친구를 사귈 때 그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다고 합니다.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내성적인 N씨는 그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부담감을 느껴 결국 좋은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며 이것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성향인지 제게 물으셨습니다. 추후에는 결국 N씨가 어쩔 도리 없이 이와 같은 문화에 적응하게 되어 적당히 자신을 드러내는 선에서 한국인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한국 문화의 특성이 외국인들에게는 큰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N씨는 한약 문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한국에 온 김에 꼭 한번 한약을 드시고 싶다며 제게 몇 번이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의학계에서 한약사들의 입지가 좁아지며 한약이 설 자리라고는 다이어트 한약이 고작이기에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방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저이기에 많은 도움은 되어드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음식이나 K-POP이 아닌 한방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한국과 일본은 서로 가깝지만 먼 나라였고 현재까지도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아베 총리의 극단적인 행보로 인한 동아시아내의 외교적 갈등까지 더해지며 서로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는 별개로 제가 한국어 서포트를 1년간 지속해오며 만나온 일본 분들은 오히려 한일관계에 있어서 자그마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한국과 일본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라고 자주 물어오셨고, 일본은 어떻게 사과하고 뉘우쳐야 좋을까요? 라고 묻는 분도 계셨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 여행을 오시거나, 한국에서의 생활을 고대하시는 분들 마음속에는 설렘이 있었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양국 간의 문제로 인한 무거운 걱정 또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탐구, 그리고 개선을 위한 개인의 작은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지 저는 이번 활동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 혹은 이미 활동하고 계신 분들 또한 저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이주희(연세대학교) 한국어 서포트 후기입니다. (한일사회문화포럼) |작성자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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