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공연·발랄한 구호로 무장… 反아베 외치는 日 젊은이들… 안보법 반대 선봉에 선 ‘실즈’
일본 정국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집권 자민당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안보 관련 법안을 다음주 중 강행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민주당과 유신당 등 야당들은 물론 지식인, 학생, 시민사회단체들이 대대적인 저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양측 모두 절대 밀릴 수 없다는 각오여서 벌써부터 격렬한 충돌이 예상된다.
그동안 일본 국민들은 내각과 거대 집권당이 정책적 결정을 내리면 군말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 서구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복종적 국민이라는 비판도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그 중심에는 일본 대학생들의 모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실즈)이 자리 잡고 있다.
◆긴 잠에서 깬 日 젊은세대
1970년대 초반 좌파 학생운동인 ‘전공투’가 소멸한 뒤 일본 대학가에서는 학생운동이 아예 종적을 감췄다. 대학생들은 사회공동체의 문제나 정치 이슈 대신에 취업이나 취미, 연애 등 개인 관심사에 몰두했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이런 현상은 한층 가속화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청년 학생들은 움츠러들기만 했다. 해외로 유학가는 학생의 수가 격감했고,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학생이 이르면 3학년 2학기부터 ‘슈카쓰’(취업활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독특한 행동 방식은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이)와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 사토리(돈벌이와 출세에 관심 없는 젊은이), 초식남(연애나 결혼에 소극적인 젊은 남성) 등 수많은 신조어를 낳았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안보 법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대학생들이 실즈를 조직해 ‘반안보법 반아베 투쟁’에 적극 동참하면서 일본 내 시위 양상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영국 BBC가 “일본의 젊은이는 눈을 떴다”고 평가할 정도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실즈의 핵심 멤버인 요코하마시립대 4학년 다키모토 미키(22)는 이런 변화에 대해 “최근 젊은이들이 시위를 하게 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과 자기 자신까지 정부의 생각으로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보법 반대 투쟁의 기폭제
실즈는 특정이념이나 정치이론에 경도됐던 일본의 과거 운동세력과는 여러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정치평론가 모리타 미노루(森田實)는 “당시(1960∼70년대) 운동은 노동조합, 학생 운동조직 등 이른바 ‘프로(전문가)들의 운동이었고 지금은 일반인, 아이가 있는 주부, 여성의 운동”이라며 “프로가 아니므로 경찰과의 대립과 충돌은 없지만, 평화의식이 매우 깊어지고 넓어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즈는 심오한 주장을 하는 대신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이야기한다. 실즈는 지난 2일 인터넷에 공개한 전후 70년 선언문에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그중에서 20여년밖에 모릅니다. 전쟁의 시대를 살아오지 않은 우리가 모르는 일, 알 수조차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거와 마주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진솔히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위하는 모습도 머리띠를 둘러매고 헬멧을 쓰고 죽도를 휘두르며 경찰과 싸우던 전공투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록밴드 공연을 방불케 할 만큼 격렬한 음악과 구호를 쏟아낸다. 기성세대가 보기에도 젊고 발랄하고 흥겹다. 이들 때문에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시위가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축제로 변했다. 이들이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1960∼70년대 학생운동 세대 출신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일본의 평화시위 현장에 주부와 샐러리맨, 고교생, 지식인 등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대거 동참했다.
지난 6일 실즈와 ‘안보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학자의 모임’이 도쿄 신주쿠에서 개최한 안보법 반대 집회에는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약 1만2000명이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전쟁 반대” “날치기 반대” “헌법을 지켜라” “아베는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난달 30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12만명의 대군중이 집결했던 것도 실즈의 역할이 컸다.
◆아베 정권과의 일전…쉽지 않은 싸움
실즈의 등장과 함께 일본의 시민사회 세력이 ‘반아베’ ‘평화수호’ 기치 아래 결집하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아베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자민당 정권이 1960년 미·일 안보협약을 강행 처리했을 때 30만명 이상의 인파가 국회의사당을 둘러싸고 항의해 결국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가 퇴진했다. 이번에는 그 이상의 ‘피플 파워’를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 아베의 독주를 막을 세력이 일본 내에서는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것에 비하면 분명히 큰 변화다.
하지만 실즈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결집이 8대 2, 또는 7대 3 정도로 아베 쪽에 절대 유리했던 싸움판을 거의 엇비슷하게 변화시켰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승부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일본 내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결집하는 만큼 그 반대로 보수우익세력도 강하게 결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의원에서 안보법안을 강행 통과시키면서 30%대까지 곤두박질쳤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최근 조사에서 46%(니혼게이자이 8월 30일)까지 반등했다. 지난 8일에는 아베 총리가 임기 3년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단독후보로 출마, 무투표로 연임을 확정 지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아베 총리는 대규모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오는 27일 국회 회기 말까지 안보 관련 법안을 확실히 성립시킨다는 방침이다. 현재 법안을 심의 중인 참의원 평화안전법제특별위원회는 15일 표결의 전제가 되는 중앙공청회를 연다. 자민당은 16일 특별위에서 법안을 가결해 이르면 이날 참의원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시키고, 늦어도 18일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야당의 저지로 참의원 통과가 어려울 경우 중의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참의원이 60일 이내에 표결하지 않으면 중의원의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법안이 성립한다는 일본 헌법상의 ‘60일 룰’까지 활용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낡은 정치 뛰어넘는 새로운 피로 성장할까
실즈는 안보법 반대 투쟁 때문에 탄생했지만 안보법 투쟁만으로 생명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즈의 시야는 이미 이번 안보법 투쟁 성패를 넘어 일본 사회의 제반 문제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즈의 핵심 멤버 3명은 지난 8일 도쿄에서 가진 강연에서 안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계속해 투쟁을 이어나갈 방침을 밝혔다. 쓰쿠바대 3학년 혼마 노부카즈는 “법안이 어떻게 되든 일본의 안보에 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며 “이 밖에도 사회보장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해 다양한 활동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각 선거구 통일 후보를 공천하도록 촉구할 방침도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치권은 내년부터 18세로 투표연령이 낮아지는 것과 맞물려 실즈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는 10일 도쿄 외국특파원협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실즈의 향후 전망에 대해 “기존 노동조합이나 학생운동 분파적인 행보와 다르다”고 높게 평가하면서 “현존하는 야권 개편을 넘어 새로운 무브먼트와 연동할지가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운동의 테마를 이해하고 이를 정책으로 전개할 수 있는 인사들을 만들 수 있을 때 정부 개편을 넘어 시민 정치 세력이 형성된다”며 “내년부터 18세부터 투표할 수 있게 된다. 실즈 등을 포함해 젊은 세대의 후보자를 응원하는 활동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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