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국제워크캠프 참가후기 (김효준/강원대학교)

샤를드골공항에서의 저녁식사

공항에서 부터 캠프가 있는 Ain Sebaa역까지 가는 기차 안 풍경

2015년 6월 30일, 25살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나 혼자서의 출국을 해보게 되었다. 비행편의 최종목적지는 아프리카 북서쪽에 있는 국가 모로코, 한국 사람에게는 다소 낯선 이 지역에 나는 워크캠프를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평소, 강원대학교 우리과 교수님인 박학순선생님께 북아프리카 여행이야기를 들으며 마그레브지역의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번 워크캠프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혼자서하는 첫 여행의 시작은 모든 것이 흥분되었다. 모로코까지의 비행편은 직항이 없었기에 파리의 샤를드골공항을 경유하였는데,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12시간동안 드골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3시간가량 더 비행을 해서야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곳에서 기차를 타고 50분 가량 더 달려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모든 워크캠프 봉사자들 가운데, 첫 번째로 아뜰리에에 입성한 듯 하였다. 첫 날은 그렇게 휴식을 하면서, 캠프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전체 봉사자들 구성은 나를 포함한 한국인 3명, 미국인 3명, 독일인 1명과 여러 모로코 청년들이 있었다.)

캠프의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평일 일과 시간에는 봉사활동을 하였고,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에는 봉사자들과 프로그램을 짜서 카사블랑카 안팎으로 놀러다녔고, 주말에는 전체가 자유시간이어서 카사블랑카 밖의 먼 곳까지 다녀왔었다. 일과 시간이라 해봤자 3시간 안팎동안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라마단기간이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나는 추측했다.


*라마단 기간은 이들에게 종교적으로 아주 경건한 기간인데, 이 기간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술, 담배, 음식물이나 물 섭취, 성행위등이 금지된다고 한다. 같이 생활해본 결과, 하루 중 5번의 종이 울리는데, 그 마지막 종(이들은 이 것을 모그랩(?)이라고 불렀다.)인 저녁 7시 50분 기점으로 금식이 풀려, 그들에게는 첫 끼니인 아침 식사(실제로 Breakfast라고 하였다.)를 하게 된다. 이들은 첫끼를 이 시간에 먹고 두 번째 끼니를 새벽2시경에 먹고, 평균적인 취침시간은 새벽 5시, 기상시간은 10시정도였다. 즉, 라마단 기간에는 대부분의 모로코사람들은 올빼미족이었던 것이다.

 

다음 사진에서 보다시피, 낮 시간의 시내의 모습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아래는 사진들은 밤 12시가 넘은 시간의 시내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저녁 7시의 풍경을 보는 듯 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어른아이 구별할 것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시내를 활보하였다.

<17살 봉사자 귀여운 유네스와, 친절하고 상냥한 파라지와 시내에서의 한 컷!>

 

한 가지 워크캠프에서의 아쉬웠던 점은, 일과 시간때 하는 봉사업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업무였던 점이다. 처음 기대했던 봉사내용은 캠프주변 시설물을 개,보수와 함께 도색작업을 하는등 다양한 업무로 기대했지만, 캠프기간내내 했던 봉사는 잡초제거, 나무심기, 숙소 내 잡일뿐이라 아쉬웠다.

하지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한 것이기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일했었다.

매일 일과시간이 끝나면, 모로코 친구들이 자신들의 문화, 삶들을 소개시켜주느라 정말 급급하였다.

 

그 중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이 '시샤'라는 아랍물담배이다. (우리나라 이태원에서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모로코 애들이 자신들의 트럭으로 데려가 이 요상한 물건을 태우고 나에게 권하는 것을 보고 뭔가 하면 안 될 일이라 생각하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 것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물담배라고 소개하고 마약이 아니라고 나를 잘 설득하게 되었고, 나도 한 번 경험해 보았다.

 

.. 흔한 전자담배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특유의 향긋한 향이 나서 나쁘진 않았다. 좋은 경험이었다!

<이들은 주로 바게뜨, 삶은 달걀, 칠면조로만든 햄등을 주식으로 따뜻한 우유, 민트티를 같이해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이 곳의 주식은 빵이었다. 처음.. 3일정도는 빵이랑 밥이랑 뭐 다 같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달랐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식습관문화라 일주일이 넘어가니, 아무거나 좋으니 익숙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졸라졸라 시내로 나가, 고향의 맛 맥도날드도 갔었다 (쌀로 된 음식은 찾을 수 없었다. ㅠㅠ)

또한 모로코 사람들은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카사블랑카가 해안도시인 점도 있겠지만, 모로코 친구들은 자주 바다에 가자고 제안을 했으며, 못해도 서너번은 다녀왔던 것 같다.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서, 해안가에서 7시 50분 모그랩이 지난 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단속때문에 엄두도 못냈을 텐데..)

 

여기까지 모로코에서의 평일의 모습들이었다. 모로코에서의 제일 기억에 남는건, 한국 돌아오기 마지막 주말, 버스로만 왕복 15시간이 걸렸던, 셰프샤우엔여행이었다.


셰프샤우엔은, 지중해와 가까운 모로코 북부 리프산맥부근에 위치한 도시인데, 베르베르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푸른색의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시 인테리어를 푸른 빛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찾았었다. (모로코에 와서 처음으로 다른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이 곳은 나를 포함한 다른 한국인친구 2명은,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위한 마지막 쇼핑을 불태우기로 결심하고 최대한 바가지를 안먹기 위해 깎고 또 깎았지만, 관광객들은 어쩔 수 없이 호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곳이기도하다.

셰프샤우엔에서의 복귀는 워크캠프의 끝을 보이게 하였다. 카사블랑카로 돌아와서부터는 나는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너무 아쉬워하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정많게 대해줬던 모로코 친구들에게 이렇게까지 정이 들었을지 몰랐다..

 

마지막 날이 되고, 최후의 만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떠나기 전까지 잠도 자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대륙, 다른 문화친구들과 많은 대화가 통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었던 점이 너무나 큰 의미가 되었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초석이 될 수도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 번 워크캠프는 내게 큰 의미로 남게 될 것 같다.

 

(지금도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이 연락을 놓지 않을 것이다.)

I will miss you Morroco, Vous me manquerez Mar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