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어전공자가 일본으로 간 이유
저는 2014년 8월부터 약 7개월 동안 한일포럼이 주최하고 코리아플라자히로바가 주관하여 실시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도쿄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졸업하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라고 자신에게 질문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일본 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음악, 영화 등을 좋아해서 일본어를 공부했던 저는 일본에 가는 것이 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가까운 일본을 단 한번도 방문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일본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본에 다녀온 후, 저는 그 당시에 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 도쿄 적응기
그렇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어로 소통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제가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8월 초의 도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덥고 습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는데요, 저는 따로 어학원을 다니지 않고 히로바에서 연결해주신 봉사활동 단체 tnvn에서 공부 했습니다. tnvn은 도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는 봉사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저는 개인레슨과 그룹레슨 모두 받았는데요, 개인레슨에서는 제 수준에 맞는 수업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룹레슨에서는 스피킹을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단체여행을 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주로 연세가 조금 있으신 편인데, 학생들을 가족처럼 대해 주십니다. 친구도 많이 없고 적응하는데 힘들었을 때 따뜻하게 말을 걸어 주셨던 분들이었습니다.
구직활동은 히로바에서 제 요구사항에 맞추어 일자리 리스트를 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마음에 드는 곳에 전화해서 면접을 보러 가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합격하지 못 했습니다. 그 후에는 제가 구직사이트에서 찾은 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그것마저도 떨어졌습니다. 여러 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 그제서야 제가 일본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다잡은 후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곳이 롯폰기힐스에 위치한 프렌치 레스토랑 ‘Brasserie Le Duc’였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그곳에서 일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좋은 친구들을 얻었습니다.
3. 롯폰기에서는 서빙, 집에서는 통역
1) 아르바이트와 생활비
한국의 아르바이트와 일본의 아르바이트의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일본인들은 아르바이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후리타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장기간 일하는 사람이 많고, 더 성실하게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일본은 한국처럼 일하는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2주 간격으로 시프트를 짜기 때문에 원하는 날에 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출퇴근시 타임리코더에 시간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페이가 정확하게 계산됩니다. 제가 일했던 레스토랑은 시급이 1000엔으로 시작해서 점점 오르는 형식이었습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시급이 높기 때문에 후리타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물론 지방 쪽은 도쿄보다는 시급이 낮지만, 그만큼 물가도 낮다고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가장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교통비였는데요, 서울기준으로 3배정도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일했던 곳은 교통비를 따로 지급해주었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습니다. 식비의 경우에는 요즘 한국의 물가와 비교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 하는 곳에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요, 이것을 ‘마까나이’라고 부릅니다. 마까나이의 좋은 점은 일본의 가정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곳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일한 레스토랑에서는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해주셨기 때문에, 가정식이 나올 때가 많았고 늘 맛있었습니다.
2) 셰어하우스와 하우스 메이트들
저는 일본에 가기 전, 히로바에서 주신 집 리스트 중에서 선택해 계약했습니다. 계약한 집은 넓고 쾌적했지만,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혼자’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셰어하우스로 이사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계약하게 된 곳이 도쿄 보더리스 하우스였습니다. 보더리스 하우스에는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살았던 집은 저를 포함해 한국인 두 명, 일본인, 멕시코인, 프랑스인 각각 한 명으로 총 다섯 명이 함께 살았고, 방은 따로 사용했습니다. 집은 작고 낡았지만, 저는 그들과 같이 살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휴일이면 놀러 다니기도 하고, 하우스파티도 많이 할 만큼 즐겁게 지냈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프랑스친구와 멕시코친구를 포함한 다섯 명 중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저 뿐이었기 때문에 중간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것조차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불편했던 점을 꼽자면, 일본 친구의 강한 절약정신과 멕시코 친구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습니다. 역시나 문화에서 오는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지만, 소통을 통해 큰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셰어하우스를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도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20대층에게는 이런 셰어하우스가 돈도 절약할 수 있고, 언어교환도할 수 있으며,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좋은 주거문화라고 생각합니다.
4. 외국인이 본 일본인
일본인들은 정말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씁니다. 이러한 면이 좋을 때도 있지만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그렇게 작은 부분까지 보기 때문에, 상대방도자기가 하는 만큼 신경 써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면이 일본인의 친절함과 그들의 서비스 문화의 토대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불가피하게 타인에게 끼치는 작은 피해에도 연달아 사과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점차 그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였고,저 또한 그 모습을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5. 홀리데이!
저는 생각했던 것만큼 여행을 다니지 못해서 아쉬운데요, ‘홀리데이’보다는 ‘워킹’의 비중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만큼 같이 일하는 분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만족합니다.
휴무에는 주로도쿄나 도쿄 근교를 여행했습니다. 한번은 길게 휴무를 내서 칸사이 지방을 여행했는데요, 몇 일간 캡슐호텔을 이용했습니다. 제가 캡슐호텔을 이용한 이유는금전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이 또한 일본의 개인적인 성향과 작은 주거환경이 반영된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했기때문이었습니다. 캡슐호텔에서의 숙박은 생각과는 다르게 편안했으며, 일본에서만가능한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칸사이 사람들은 말투뿐만 아니라 패션 또한 도쿄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거리의 분위기도 각기 달라서 거리를 걸으며 행인들을 보는 것조차도 흥미로웠던 여행이었습니다.
귀국전에는 홋카이도를 여행했습니다. 여행 내내 눈이 왔고 도쿄보다 훨씬 추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높이 쌓인 눈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나게 여행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홋카이도여행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눈꽃축제가 보고 싶어서 매 년 겨울이 되면 홈페이지를확인해 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고 가자고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을 실행에 옮긴것입니다. 홀로 도쿄에 와서 제 힘으로 생활했고, 그렇게번 돈으로 눈꽃축제를 보러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워킹홀리데이를통해서 ‘일본에 가고싶다’ 라는 소망을 행동으로 옮겼고, 레스토랑 일이 어려워도 참고 노력해서 익힐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써‘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돌아갈 수 있는’ 곳까지 생겼습니다. 저는 일본어 실력이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하지만, 일본의 언어, 문화, 사람에대한 저의 애정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도쿄 워킹홀리데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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