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한일포럼 참가후기
성신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홍지은
지난 달 20일부터 21일, 약 이틀에 걸쳐서 제 2회 한일미래포럼이 진행되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굉장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참가하였는데,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토론 주제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일문과 전공생이기 때문에 약 1년 간 도쿄에서 유학을 한 경험은 있지만, 그곳에서 만난 어느 일본인과도 한일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봐 혹은 나의 감정이 격해져 사이가 틀어질까봐, 의식적으로 그런 주제를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한일포럼이 주최하고 코리아플라자히로바가 주관하여 실시한 프로그램인 이번 포럼은, 양국 관계 개선에의 의지가 있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자원 참가하여 ‘한일관계’를 논하는 목적으로 실시되었기에, 앞서 말한 걱정과 부담감 없이 솔직하게 한일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상대국 학생들의 진실된 의견을 청취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컸다.
이렇게 참가한 이틀간의 포럼은 상당히 타이트한 스케줄로 진행되었는데, 아마 주최측에서 예상한 것 보다 참가자들의 의견 교류와 발언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위원장 사사야마씨도 언급하셨지만, 모든 참가자가 입이 마를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단 공식 스케줄 뿐 아니라 취침 전과 자유시간에도 양국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안에서 나는 사실 양국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유학한 지역은 도쿄이고, 이번 포럼의 일본인 참가자들은 대체적으로 관서지방의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도쿄사람들에 비해 관서지방출신들이 훨씬 한국인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공통점이 더 많았던 만큼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점들이 눈에 띄었는데, 우선 보편적으로 정의되는, 소위 ‘일본인의 성향’으로 구분되는 소극적인 태도를 꼽을 수 있다. 발표나 질문을 할 때에 한국인 참가자들에 비해 일본인 참가자들은 적은 참여율을 보였다. 물론 이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일본인들의 성격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조원들과의 첫 대면 때에 한국인 참가자들이 처음부터 친근하게 다가가는 양상을 보인 것과 반대로, 일본인 참가자들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단계를 밟아가며 서서히 가까워지려 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번 포럼에서 새로이 느꼈던 차이가 있다면, 첫째로 일본인 참가자들의 책임의식이다. 위원장을 필두로 한 위원회 학생들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매끄러운 진행과 진지한 자세로 활동에 임했고, 회의를 순조롭게 이끄는 리더십을 보였다. 철저하고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 책임감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또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 혹은 조별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조금은 수줍어하고 내성적인 모습을 보인 일본인 참가자들이,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경우 즉 많은 이들 앞에서 대표로 의견을 어필할 경우에는 상당히 조리있는 논조와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주장했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인상 깊었다. 이는 ‘모두’의 앞에서 의견을 말한다는 것, 즉 어딘가의 대표로서 자기 발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어진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일본인 참가자들의 열린 사고이다. 일단 일본인 참가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상대의 말을 끊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대화 중 상대방의 말을 자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할 때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주장에 급급한 나머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는 경우가 종종 있고 나 또한 그렇기에,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 상대와 이야기할 때 의식적으로 신경 쓰기 때문인지 이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조였던 일본인 참가자들은 단 한 명도 상대의 이야기 중에 갑자기 끼어드는 경우가 없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각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번 나의 주장(때로는 고집)을 끝까지 경청하고 신중하게 피드백을 해 주었다. 주제와는 상관없이, 나는 매 토론시간마다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나의 부족한 점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포럼 전반을 통해 가장 기억에 깊게 남는 것은, 아사히신문 서울지부장인 카이세 아키히코씨의 강연에 이어지는 질의응답이었다.강연 내용 중 한국미디어의 문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아베 총리의 전투기 탑승 사진과 전투기에 쓰여진 731이라는 숫자에 대한 한국 미디어의 자극적 기사를 다룬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카이세 아키히코씨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을 했었고, 영광스럽게도 칭찬 섞인 피드백을 받았다. 질문의 내용이 공격적으로 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질문이었기에, 고민 끝에 발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일을 언급하는 이유는 단지 질문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이 개인적으로 뿌듯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강연과 질의응답이 끝난 후, 참가자 전원이 함께 친목회로 가는 길에서 받았던 일본인 참가자들의 반응이 예상 외였기 때문이다.
질의응답이 끝난 직후 자리를 이동하는 북적북적한 틈에 2명의 일본인 참가자가 각각 내게 다가와, 나의 발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솔직히 나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나 비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나에게 ‘감명깊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목회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서도 몇몇이 나에게 와서 비슷한 피드백을 주었다. 물론 한국인 참가자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긴 했지만, 일본인 참가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우리 한국인이 그런 민감한 문제에 대한 자국 비판 의견에 ‘감명깊다’,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을까?내 생각엔 대다수의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것을 직접 와서 이야기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나에게 나의 발언이 훌륭했다고 말해 주었지만, 난 자국을 비판하는 타국인에게 먼저 ‘좋았다’고 말하는 그들의 객관적이고 열린 사고방식, 그 정정당당함이 훨씬 훌륭하고 빛났다고 생각한다.
모든 한국인들을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무의식중에 약간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역사 문제 등 민감한 문제일수록 그렇다. 일본인 또한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당연히 어느 정도는 반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했고, 앞서 말한 질의응답 뿐 아니라 프로그램 내에서 이루어진 여러 토론에서, 한국인 참가자들의 일본 비판에 대한 반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일본인 참가자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상대의 의견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한일관계 개선에 있어서 양국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한국의 중·장년층 대다수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분들은 일본의 무조건적인 사과와 사죄만을 바라는 듯 보인다. 물론 현재 한일관계악화의 큰 원인인 일제식민지기를 직접적, 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내가 그분들이 일본에 대해 감정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시간은 많이 지났고, 한일문화개방 등 여러 요소들로 인해 ‘친숙한 일본’,‘친숙한 한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세대이기에, 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과거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바탕에서의 논의는 보다 생산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으며, 우리 세대는 바로 그 시작점이다. 관계 개선을 위한 첫걸음은 상대에 대한 이해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간의 많은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인과 일본사상사를 논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연구이자 서적인 <국화와 칼>은, 한 번도 일본땅을 밟아본 적 없는 미국인 루스 베네딕트가 미국 내에 있는 일본인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일본인의 사상과 특질을 파악하고 이해하여 1년 만에 완성한 연구성과이다. 이처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대화'이다. 때문에 앞으로도 한일미래포럼과 같은 토론의 장이 지속되고, 또 더욱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제 2회 한일미래포럼 참가후기 (한일사회문화포럼) |작성자 홍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