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16주간의 값진 체험
막 가을이 끝나갈 쯔음,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했던 구마모토. 시골인듯하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그런 도시. 큐슈지방은 처음 와본 터라 여태까지 배워왔던 표준 일본어와는 다른 방언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낯설었다. 처음엔 설마 아직 한국인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봐도 들어선 빌딩과 가게들의 한자로 된 간판을 더듬더듬 읽어나가며 유추해볼 뿐이었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처음에는 정말 어색하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던 날이 기억난다. 국제교류회관의 야기상이 쿠마모토에 대한 소개, 회관에서 하는 일들을 설명해주시고 앞으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해주셨다. 또한 카츠야상께선 우리가 한 달 동안 받게 될, 한일포럼이 주최하고 코리아플라자히료바가 주관하여 실시한 어학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을 소개해주셨다.
우리 GIP 일행들은 한 달간 어학능력증진을 위해 아주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을 하였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나의 소개를 하기, 구마모토에서 실지로 쓰이는 방언체득을 위해 상황극도 해보았다. 또한 교실 밖에서 구마모토의 정취도 느낄 기회도 있었다. 아소산 볼케이노 박물관을 가거나, 쿠마모토의 가을의 대표적 행사인 미즈아카리 축제에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지역의 대학생들과 교류 할 수 있었다. 또한 교류회관에서 준비한 기모노 입기 행사와 다도체험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이 모든 일정의 마무리였던 수료식에서는 회관 스태프 분들과 한 달 동안 분주히 GIP를 위해 열정을 쏟아 부으신 선생님들이 참여하여 성과발표회를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각자 흩어져 배정받은 인턴십 장소로 파견이 되었다. 나는 악기점에 배정이 되어 11월부터 일하게 되었다. 어딜 가던 처음에는 청소부터 시작하니까, 라고 생각하며 어떤 일이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체험이라고 생각하며 임하였다. 운이 좋게도 야마하 음악교실도 같이 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야마하 음악교실이란 최근 한국에서도 중독적인 CM송과 함께(?) 미취학 아동과 초등 저학년을 상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음악교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야마하 음악교실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출근한지 일주일 만에 반년~1년에 한 번 있는 아이들의 성과발표가 있는 콘서트도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두, 세 주 가량 흘러 악기점의 일주일 주기의 일정을 체득하고 출근하시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름도 외워갈 즈음, 그룹 수업에 참관해보면 어떻겠냐는 사장님의 제안이 있었다. 유치원반과 저학년반의 베테랑선생님으로 통하는 나가타 선생님의 유치부와 초1학년 반을 연달아 참관하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실기교사 자격증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더 몰입해서 참관하게 되었다.
10년 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내가 다니던 이런 동네 피아노학원은 “동네피아노학원” 의 타이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진도를 빼기에 급급했던것 같다. 이는 분명 학부모의 니즈-내 자식은 어느 아이들보다 뛰어나야해!- 를 반영한 것이리라. 그러나 참관 후 이러한 생각은 와장창 깨졌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거의 학원을 끊어주고, 아이들은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학원차 타고 학원에 오는 게 거의 일상이었을 것일진대, 이곳의 학부모는 같이 수업까지 들어간다. 이것이 과잉보호인지, 자식의 인성과 가르침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돈만 내주면 그만이지, 식의 교육태도보다는 더 낫지 않나 싶다. 이러한 학부모님들의 존재에 아이들은 더 예의 바르게 “밥상머리 교육” 뿐만이 아닌 생활에 배어있는 교육(또는 훈육)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저마다 다른 인지발달 상태에 따른 진도(혹은 학습태도 등)를 거의 균등하게 맞춰 우열없이 똑같이,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보상과 학습의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또한 유아들의 음악의 습득,학습법에 대해 좀 더 차이를 느낀 것이(이는 나라의 차이도 있지만 가르치는 선생의 교육법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림) 있는 악보를 보고 혼자 치기에 급급했던 나의 어릴적에 비해서 이곳의 선생님들은 여러 가지 소리가 나는 일렉톤을 이용해 “피아노”의 소리 뿐 만이 아니라 다른 악기의 소리를 비교적 일찍 접할 수 있게 하고 시창(악보를 보고, 곡을 듣고 따라 부르기)과 청음(음을 듣고 알아 맞추는) 능력도 같이 발달시키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고 하신다.
그에 반해 난 어릴 적 피아노학원에 다녔을 때 전자피아노로 다른 음을 내거나 하면 피아노 소리로 바꾸라며주의를 주셨었던 기억이 난다. 이는 정말 내 전공연관에 있어 꽤나 많은 도움과 교육법에 대한 힌트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인턴 밖의 활동으로 꽤나 개인공연을 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이는 내가 GIP프로그램에 자소서를 낼 적에 특기란에 피아노를 적은 것이 화두였다. 그 이후로 내 자작곡을 성과발표회에서 발표한 이후로 교류회관의 1층의 링크까페에서 까페 라이브를 요청받아 재능기부공연 느낌으로 까페 느낌의 여러 곡을 준비해가서 4시간의 연주를 무사히 끝마쳤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구마모토역 신토신프라자 5층 홀에서 내 자작곡으로 공연을 한 것이다. 이는 악기점 사장님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못 이겨 연주자 모집에 지원했는데 용케 조인공연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음악교실의 학부모님들과 아이들도 와서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12월 초 교류회관의 Year End Party 가 있었던 날에도 30분간의 텀에 라이브 연주를 하였다. 파티 겸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메들리와 겨울왕국의 곡들을 준비해갔고, 교류회관 국장님께서도 매우 좋아하셨다. 이렇게 라이브를 잔뜩 할 수 있었던 것은 특기를 인정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어떤 전공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이 사람은 또 뭘 잘하지? 혹은, 어떤 것이 흥미가 있어서 무슨 일에 적합할까? 라는 인식. 학벌에 급급한 우리네 사회랑 분명한 차이였다.
사례는 나 말고도 더 많았다. 나는 사장님이 하시는 또 다른 사업장에(까페겸 식당) 투입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놀랐던 게 며칠 전만 해도 우리 악기점에 조율하러 왔다며 온 조율사분이 여기서 양파를 썰고 카레의 루를 만들고 있던 것이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보며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회풍조는 하루아침에, 개인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범위가 아님에 쓴 웃음을 띄웠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약 한 달이 좀 넘게 남았지만 여기서 했던 기이하고도 인상적이었던 체험은 좋은 밑바탕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그런…
16주간의 추억에 인연을 맺은 구마모토의 사람들과, 국제교류회관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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