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캠프를 떠나는 전날까지도 가야할지 망설이다 고민 끝에 캠프에 참여하기로 했다. 캠프하루 전 날인 목요일이 시험 마지막 날이였고 캠프 당일인 금요일이 체육대회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일본에 가본적도 없이 혼자 일어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에게는 처음으로 일본인과 대화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혹시나 일본인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과감히 체육대회를 포기하고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됐다.
결과는 대성공! 대만족!
합류장소인 전주로 가는 버스안에서 원래 출발장소가 명동이니까 거기서 벌써 다들 친해져서 내가 낄 수 있는 자리가 없으면 어쩌지...걱정했는데 다행이도 합류한 버스에 혼자 앉아있던 여자 아이가 “여기 앉으세요!”라고 하면서 자신 옆의 빈자리를 툭툭 내려치며 신호를 보내왔다. 내 속마음을 알고 하늘이 도운 건지 같이 앉게 된 사람은 일본인 후미카 였다!
오늘을 위해 전자사전을 들고 왔다고 일본어로 말하는데 사전 발음을 [직쇼]로 착각해서 후미카가 [욕?짐승?]이라고 말하기에 가방에서 직접 전자사전을 꺼내 [직쇼,사전!이거!] 이러며 오해를 풀기도 했다.
서로 한국어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 했는데 후미카는 엄마가 한국드라마 애청자여서 자신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접하게 됬고 케이윌이 너무 좋고 현재 학교에서 한국인 선생님에게 한국어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일본친구가 한국이 좋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내 자신도 으쓱해졌다.
나는 순간 혼자가 아님에 안도했고 한 참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숙소인 고창으로 이동했다.
첫째 날 밤은 문화교류 시간을 가졌고 서로 자기소개와 이 캠프에 참가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안그래도 평소에 사람얼굴과 이름을 못 외우는지라 일본분들의 이름은 심각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마구마구 섞여버렸다.
해가 뜨고, 고창 보리밭 축제 현장으로 이동을 했고, 각각 조를 나누어 자신이 해야할 일을 배정받고 설명을 들었다. 내가 할 일은 보리밭 지키기! 수확을 해야할 소중한 보리들 이지만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위해 사진을 보리밭으로 들어가고 자꾸 뽑아서 울타리 안 1M에서는 전혀 수확하지 못한다고 했다.
정오가 다가올 무렵 사람들이 밀물 들어 오듯이 많아졌고 보리밭을 훼손하는 사람들도 그 만큼 많아졌다.
지휘봉 대신 허공에 보리로 지휘하는 아이들, 밭 안에 누워서 사진을 찍는 커플, 풀피리를 만들어 피리를 부는 중년 부부까지..최대한 기분상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고 다행이도 화내는 분은 한분도 없었다. 사실은 같이 했던 언니가 반 이상 해주었지만..
그렇게 무사히 고창 보리밭 축제 현장에서의 봉사활동을 마쳤다.
숙소로 돌아와 문화교류 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서 내가 몰랐던 놀라운 사실들을 몇 개 알게 됬다.
홋카이도에서 온 일본 언니 말에 의하면 여름에도 바닷물이 차갑고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와서 임시휴교를 한다고 한다.
여름에도 차가운 바닷물이라니! 분명 내가 아는 바로는 물은 땅보다 빨리 데펴지고 빨리 식는데.. 여름에도 차가운 바다. 생각만해도 등골이 서늘해 지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에서는 아키타에 미인이 많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아키타 출신친구에게 들은 말로 아주 신빙성 있는 말은 아니지만 아키타 출신 남자가 아키타를 떠나 타지 생활을 한 후 다시 아키타로 귀향하면“역시, 여자는 아키타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해준 아키타 출신 친구도 아키타출신인 일본인 스태프도 출중한 외모를 겸비하고 있었다.
둘째 날 해가 밝고 우리는 고창 고인돌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한국인인 나도 처음 알게된 사실로, 박물관 가이드 아저씨 말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많은 나라가 한국이며 한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 편중되 있는 곳이 고창이라도 한다.
실내 건물에서 고인돌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들었고 고인돌을 만들었던 시대에도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분명 초등학교 저학년 쯔음 교과서로 배운 고인돌을 만드는 그림에서 원시인들은 알몸이였던 것 같은데..
고인돌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쌓은 뒤 밖으로 나와 대여 자전거를 타고 직접 고인돌을 보기 위해 안장에 올랐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내 자신이 자전거를 못탄다는 사실을 처음알았고, 내가 주변을 맴돌고만 있을 때 다른 친구들은 각 자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지 시작했다.
고맙게도 후미카가 이런 내 모습을보고 자신의 뒷자리에 태워 주어서 무사히 드라이브 할 수 있었다.(양쪽 가랑이가 너무 아픈 자리지만 같이 탈수 있음에 너무 행복했다.)
후미카에게 물어보니 일본에도 고인돌이 있긴 있지만 이렇게 많이는 없는 걸로 알고 있고 자신은 일본에서 본적이 없다고 했다.
박물관을 자전거로 돌아보고 전주 한옥마을로 향했다. 특히 후미카는 자신의 고등학교 한국어 선생님이 전주출신이라며 그 누구보다 더 기대했다. 여기서는 스태프의 동참없이 자유롭게 한옥마을을 구경할 시간이 주어져서 천천히 원하는 곳을 둘러볼수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한옥마을 내부를 돌아다니기 보다는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다. 영어나 외래어로 된 간판보다는 한국말로 된 간판이 훨씬 많아서 여기가 한옥마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밥을 먹은 식당 간판도 한국어!
점심을 먹고 2박3일 일정의 마지막인 사물놀이를 배우기 위해 전주 전통 문화원으로 향했다.
시원한 기와집 마루 바닥에 앉아 장구치는 법을 배우는데 지나가던 관광객분들이 하나, 둘 창가에 모여서 구경을 하던 것이 순식간에 엄청 많아져서 창문을 빼곡하게 채웠다. 부..부끄러워서 집중을 못하겠사와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시간은 첫째 날 둘째 날 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고 벌써 정신차려 보니 어느새 되돌아 가는 버스 안이였다. 우리가 처음 만날 첫째 날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에 옆에 앉은 후미카에게 “헤어지기 싫어.. 마음만을 두고 갈게.”라며 가슴팍에서 무언가를 떼는 시늉을 하니 후미카도 양손을 내밀어 그 걸 받으며“잃어버리기 전에 가방안에 넣어야지”라고 하며 가방 자크를 열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 전원이 카카오톡과 패이스북 아이디를 공유해서 친구가 됬고 2박3일동안의 워크캠프는 이렇게 끝났다.
2박3일동안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다음번에도 경제적 여유와 시간만 허락된다면 또다시 참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