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벌써 11월이 끝나가고 마지막 달로 접어들고 있다.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서 이번 달을 뒤돌아 보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11월 초에 강화도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2박 3일간의 여정, 처음에 모집 글을 보고 참가하고픈 바람을 가졌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나를 웃음짓게 하는 기억이다.
여행은 11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10월 말에 인터넷 카페에서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전화면접 가능 일자를 메일로 제출한 후, 예정 시간인 오후 2시부터 기숙사 방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전화기를 옆에 놓고 기다렸다. 그랬다.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최대 5시간을 기다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2시 반에 포럼 직원분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좋은 하루 되세요"로 끝낸 10여 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내려놓은 말의 향연, 나에 대한 '과대 포장' 시간이 있었다. 무조건 '된다'고 했다. 어떠한 날짜에 OT를 해도 갈 수 있고, 조장도 할 수 있고 일본어를 거의 못하지만 Body Language로 모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이번 캠프에 참가하고자 했던 나의 열정은 진심이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나의 전화면접을 옆에서 들은 기숙사 룸메이트의 비웃음(?)과 함께,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며칠간의 시간이 있었다.
결과 발표 날짜와 시간이 임박했지만 합격했다는 전화는 오지 않았는데,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았던 메일로 합격 통보가 와서 매우 기뻤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리엔테이션 날짜가 미뤄져서 10월 27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메일로 받았고, 이는 우리 학교의 중간고사가 끝난 주 였다. 빨리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설렘 때문에 시험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4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고 OT장소인 충무로로 달려갔다.
역시 처음이라 그런지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자기소개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풀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비로소 내가 잘 못 하는 것은 '못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각기 간단한 자기 소개 후에 조별로 모여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날 우리 4조에는 한국인인 나와 승민이·은정이·무늬와 한국말을 너무 잘 하는 일본인 유미리 상, 그리고 영어를 너무 잘 하고 술도 잘 마신다는 텍사스 출신 승효가 함께했다. 이 때만 해도 우리 조가 캠프에서 '블루칩'이 줄은 몰랐다. 조장은 믿음직한 승민이가 되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면접 때 조장을 맡겠다 한 것은 면접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함이었다'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충실한 조원, 조력자가 되기로 약속했다.
우리 조원들과,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주신 다기형, 전혀 모르던 사이였는데 내 중학교 선배인 것을 알게 된 경식이형, 이름이 헷갈려서 계속 '막시무스'라고 불러서 미안했던 잘 생긴 Dane(덴마크인) 라스무스 등 1주 앞으로 다가온 캠프에 대한 좋은 예감을 안고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1주일 뒤, 명동에 위치한 서울글로벌문화관광센터에서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 수업은 학교에 허가를 받아 불참한 채로 명동으로 향했다. 나름 최대한 빨리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지각을 하고 말았다. (이날 비로소 명동에 ZARA가 2군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센터 4층에 들어가서 다시 만난 조원들과 인사를 한 후, 첫 번째 프로그램인 한복 만들기를 하게 되었다. 이 날 지난 주 OT때 보지 못했던 쿄코 상과 카나에 상과도 인사를 했다. 새로 본 두 일본 분들, 특히 쿄코 상이 어떤 유명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글루건을 이용해서 별로 자신이 없는 공예실력을 발휘하여 한복을 완성, 기념품으로 보관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층에 있는 무대가 딸린 방에 들어가서, 단체로 K-Pop댄스 강습을 받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이전에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그리고 지난 주에 OT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곡명을 알아서 연습을 좀 하고 싶었으나, 알아내는 데 실패했고, 곡명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것을 이날 알게 되었다. 강남스타일은 후렴구의 말춤 말고는 춰 본 적이 없어서 다소 당황했지만, 나름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배웠다. 빙빙 도는 부분에서는 우리 조원들이 다 같이 손을 잡고 돌기도 했다. 살짝 추워지는 11월 초에 땀이 범벅되도록 추니까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강사분께서 앞자리에서 췄던 사람들을 무대에 다시 올리셔서 앵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기억도 잘 안나고, 체력도 떨어져서 잘 추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웠지만, 모두들 잘 봐주셔서 감사했다. 그래서 우리 조의 승민이와 함께 마스크 팩으로 추정되는 상품을 받았는데, 우리 조 여자아이들이 '잠깐 보자'고 해서 넘겨주었고, 그 이후로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게 빨간색이었다는 것 정도가 기억난다.)
이제 식사로 치면 '에피타이저'가 끝나고, 이번 캠프의 본 무대인 강화도로 향하는 버스를 타게 되었다. 여기서 정말 좋았던 점은 주최측에서 미리 한국인-일본인 짝도 배정해 주고, 버스 안에서 식사당번 조를 결정하는 빙고게임도 준비해 주신 점이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다. 나의 짝은 아츠코 상이었다. 처음에 같이 빙고게임을 했지만 둘 다 당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빙고게임이 끝나고 가는 중에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실제로 일본인과 이렇게 얘기를 해 본 적이 처음이었고, 그러다보니 궁금한 것도 많아서 계속 이것저것 물어봤다. 피곤해서 버스에서 좀 자고도 싶었을 텐데 질문에 잘 응해주고, 얘기도 많이 해준 아츠코 상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아, 그리고 원래 이날 하기로 예정되었던 테디베어 만들기가 한복 만들기로 바뀐 것에 대해서 아츠코 상이 매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얘기하면서 가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갔다. 강화도에 도착해서 펜션까지 10분 정도 걸었다. 우리 조 아이들과 걷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매우 웃겼다. 그 원인이 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밌게 얘기하면서 펜션에 도착했고, 방 배정을 받고 저녁을 먹으러 여자 숙소 쪽으로 올라왔다. 우리 방은 2층에 아늑한 다락방이었는데, 유일한 침대 하나가 우리 눈에 띄었고, 그 침대는 당연히 경식이 형이 쓰도록 우리 방 멤버 모두가 모셨다.
여자 숙소 쪽으로 올라가니 승재 형과 다기 형이 이미 고기를 굽고 있었다. 평소에 이런 자리에 있으면 직접 고기를 굽는 편이라 어느 정도 구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가 굽겠다'고 해서 얼마간 구웠다. 나름 열심히 굽긴 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숯검댕이였다'는 의견이 많아서, 모두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어쨌든 얼마간 굽다가 옆에서 계속 기다렸던 어느 분과 교대를 했다. 그때 당시에는 이름을 몰랐고 이 사람은 고기 뒤집기, 자르기, 소금 뿌리기, 마늘 굽기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자리는 한 명의 캠프 영웅을 탄생시킨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날 저녁에 있었던 조별 퀴즈에서 첫 번째 인물 퀴즈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결코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조별 퀴즈 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한일 양국의 세계 문화유산과 관련한 OX퀴즈, 그리고 그림을 그려서 맞추는 문제, 동작을 전달해서 단어를 맞추는 문제 등이었다. 이번 캠프의 주제가 '세계문화유산과 함께하는'이었던 만큼, 특히 OX퀴즈의 경우 좋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4조는 운이 잘 따라줘서, OX퀴즈 전부를 맞췄다. 그림 그리기 문제 또한 '장순항'이라는 정답을 제외하고는 모두 맞추는 등, 결과적으로 높은 점수로 우승을 차지하게 되어서 그것 자체로 너무 좋았다. 상품이 무엇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로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다음날 봉사활동을 해야 했기에 이날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다기 형과 리현이가 마피아게임을 잘 진행해 줘서 짧은 시간 동안 재밌게 놀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게도 5명의 마피아가 끝까지 살아남았던 것이 놀라웠다. 특히 밤이 되면 고개를 슬며시 드는, 히로유키 상을 비롯한 마피아들의 모습이 매우 소름끼쳤던 생각이 난다.
짧은 자유시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당번과 함께 봉사활동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반가움과 아쉬움에 새벽까지 더 얘기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샌드위치와 스크램블 에그를 비롯한 아침을 만들었는데, 우리조는 정작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쨌든 준비를 마치고 20분 정도를 걸은 다음, 시내버스를 타고 봉사활동 장소로 가게 되었다. 아마 이 무렵쯤에 드디어 카나에상과 쿄코 상이 각각 아유미와 옛날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에바'와 닮아서, 아유미 상, 에바 상이라고 불렀다. 근데 웬일인지 둘은 그 별명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봉사활동을 하러 간 곳은 '해람도서관'이라는 곳이었다. 이곳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었고, 이를 정비하기 위해 우리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OT때 미리 정한 대로 조를 나누어 활동에 들어갔다. 벽화 그리기, 벤치 만들기, 돌담쌓기 세 가지였는데 나는 일손이 가장 필요한 벤치 만들기를 하게 되었다. 오전에는 벤치의 나무 부분을 락카로 칠하고 수건으로 닦아내는 작업만을 하게 되었다. 막바지에는 실내 작업을 마치고 온, 효은 씨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서 히로유키 상이 일본어로 대화를 계속 해서, 그때마다 효은 씨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는데, 이 때의 수확이라면 순항이가 군대 면제를 받은 것, 그리고 옛날에 복싱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승재 형이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와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미씨, 선미씨가 데려온 도서관의 어린이, 이번 캠프에서 감초역할을 제대로 한 지수, 그리고 리현이와 함께 공기놀이 등을 한 다음 다시 일을 재개했다. 오후에는 오전에 락카칠을 했던 나무와 쇠로 된 뼈대를 합해서 벤치를 조립해서 완성시키는 작업을 했다. 조립을 위해서 전기드릴을 난생 처음 쓰게 되었다. 내가 작업을 할 때 부산에서부터 먼 걸음 하신 수연 씨가 도와주었다. 수연 씨는 내가 드릴을 쓸 때 고정을 해 주는 것은 물론, 내가 하는 것이 영 아니다 싶을 때에는 직접 드릴을 들어 나사를 박아주기도 하는 등 정말 감사했다. 나름 힘든 일을 같이 해서 끝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고, 만들어진 벤치가 너무 예뻐서 더 좋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그래서 그 시간을 위해 저녁을 먹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론 저녁 식사당번 조는 쉬지도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쉬다가 조금 늦게 가서, 카레라이스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매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식사 이후에는 각자 소감발표를 하고 베스트캠퍼를 뽑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를 했고, 정말 찍고 싶었던 사진을 찍었다. 베스트캠퍼 투표 때, 나는 투표할 때 정말 고심했다. 왜냐면 표를 주고 싶었던 멤버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틀 동안 정말 좋아하게 된 순항이를 두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다른 멤버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베스트캠퍼는 1기 멤버로서 걸맞게 서로가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 리현이와, 진지함 속에 따스함이 엿보이는 유우 상이 되었다.
마지막 밤에는 남아 있는 멤버들끼리 술게임도 하고, 얘기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다가 제일 마지막에 잠이 들었다. 아쉬운 점은 술을 비롯해서 과자 등의 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물론 엄청 많이까지는 필요 없겠지만, 더 있었다면 좀더 즐겁게 마지막 밤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밤이었다. 특히 이번 참가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카린 상의 남편분께서 강화도까지 직접 찾아오신 것은 무척 감동이었고(그녀로부터 들은 결혼 스토리 또한 그에 못지않은 감동이었다), 은지 씨가 가져온 카드를 가지고 7년만에 시도해 본 매우 초보적인 카드마술을 성공한 것은 매우 기분좋은 기억이었다. 물론 7년 만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몰래 동영상을 검색해서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 밤은 그렇게 아쉽게 지나갔고, 이제는 마지막 '낮'이 남았다. 마지막 날 일정은 강화도박물관과 고인돌 유적 견학이었다. 조끼리 박물관을 구경했는데, 나는 얕은 지식이나마 아는 대로 일본 분들에게 설명을 했지만 효과가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에게도 강화도는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 오는 곳이고, 특히 웅장한 고인돌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라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게, 2박 3일 간의 너무나도 짧았던 이야기는 일단은 끝이 났다. 마지막 날 점심 먹을 때 승재 형이 했던 '이틀만 더 있고 싶다'라는 말은 그 누구라도 동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진한 아쉬움 속에 각기 헤어지고,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다.
지금 후기를 쓰면서, 우리가 처음 만난 OT때 사진을 보고 있다. 그 때만 해도 누가 누군지 몰랐던 사람들이 지금 다시 사진으로 보면 참 새롭다. OT때 내 뒷자리에 유미리 상(이번에 지은 한국이름이 한수진이랬던가?)과 무늬가 있고, 오른쪽 옆에는 은지 씨가 있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더군다나 내 왼쪽 옆에 순항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깝다. 어쨌든 이전까지는 서로 길에서 마주쳐도 그냥 지나갔을 사람들이, 짧은 기간이나마 함께함으로써 좋은 추억을 공유하면서 인연을 맺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러한 단순한 이치 속에서, 나이가 몇이든, 국적이 무엇이든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내가 면접 때 허풍을 떨기는 했지만, 만약 이번 캠프에 참가했던 일본 분들이 한국어를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통했을 것 같다. 몸짓언어든, 다른 그 무엇을 통해서든.
이번 캠프에서 아쉬웠던 점 하나가, 기간에 비해서 참가자 수가 많아 짧은 시간 동안 모두 친해지기가 다소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추억을 공유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비록 그 때 얘기를 많이 못 해봤어도,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서먹서먹하지 않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그 때, 그곳에서 함께 즐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