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하고 맞이한 반가운 손님/이승희
늘 여행을 즐기고 평소 일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언젠가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 여대생 두명에 대한 호스트를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적극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우리집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교수님이 게스트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좀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교수도 사람이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흔쾌히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음...어떤 사람이 우리집에 오게 될까? 라는 설레임과 궁금증이 기다리는 날들 내내 내 마음을 두근 거리게 하였다. 키는 클까? 뚱뚱할까? 성격은 어떨까? 내가 해준 밥이 입에 맞을까? 낯선 사람이 우리집에 온다고? 등등 두려움과 기쁨이 하루에도 몇번씩 교차하였다.
한일사회문화포럼에서 계속 문자와 메일이 오면서 상황을 설명해주고 주의점도 알려주고 계속 의사 소통을 해나가면서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기 시작했다. 화장실이며 창문이며...묵은 때까지 벗겨내고, 방문마다 이름도 붙여놓고 물론 일본어로...그리고 집을 둘러 보며 화분을 이리로 옯겼다가 저리로 했다가 어쨌든 덕분에 집안 대청소를 하였다.
늘 큰딸을 아끼고 배려해주시는 엄마는 게스트를 위해 밑반찬을 여러가지 해다 주셨다. 장조림, 도라지무침, 멸치 볶음, 콩장, 깻잎장아찌....등등. 덕분에 나의 식사 준비에 대한 마음의 짐을 반으로 덜수있었다. 엄마, 고마워요! 드디어 9월5일 시청 잔디밭으로 고고! 사실 전철로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 반전에 나섰다. 시청주변에 호텔이나 인포메이션 센타에 는 게스트를 위한 지도를 구하기 쉽기때문에 들려 갈 마음이었다.
프라자 호텔에서 지도를 구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시청역 5번 출구로 향하려는 데 한무리의 여대생들이 모여 있는 것울 발견하고 우리팀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약간의 어색함을 뒤로 하고 그 대열에 껴 있었다. 드뎌 나의 게스트와의 도킹! 역시 밝은 미소는 서로를 환영한다는 최고의 표현인 듯했다.
연신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말로도 대신할수 없는 환영의 메세지 빵빵이었다. 모두 서로의 만남을 기뻐하며 왁자지껄! 체구에 비해 엄청 큰 그녀의 가방을 서로 끌고 광화문역까지 와서 집인 광나루역까지 왔다. 우리 둘은 어색함 전혀 없이 서로를 알아가려고 폭풍수다와 함께 애쓰고 있었다. 현관문 여는 법도 알려주고 방까지 안내하고 나는 저녁을 잽싸게 준비했다. 전유어와 잡채 그리고 나물류와 된장국! 한그릇을 뚝딱 비워줬다. 고마웠다! 7박 8일을 보내는 동안 나의 일과 일상을 남과 공유한다는 것이 생각으로는 참으로 힘든 것이었지만 막상 부딪히고 보니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었다.
우리식구끼리였으며 아무 그릇이나 썼을 테지만 한국을 대표해 한국 이미지를 쌓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굴려 내놓았다. 식사 메뉴정하기도 한국을 대표하는 가정식을 위주로 잡채나 설렁탕등등 매끼 한두가지씩은 꼭 새로 하였다. 또한 마지막날 저녁 김밥을 싸먹으며 간단한 요리 강습도 하였다.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직접 실연 했던 것은 오랫동안 여운이 남고 참 좋은 추억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서로 사진도 찍고 음식도 나눠 먹고...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국이 처음인 우리 게스트에게 정말 많이 한국을 알리려고 애썼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런 이유로 너무 말이 많지 않았나 하는 미안한 감이 든다. 미안 친구! 이번 경험을 거울 삼아 앞으로 언젠가 이룰 나의 꿈-게스트하우스 운영이 나에게 잘 맞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원없이 일본어를 쓸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늘 생각만큼 현실은 그리 힘들지 않은 것 같다! 역시 경험은 해봐야한다. 뭔가 내게 엄청난 재산이 생긴 것 같다. 미야자키에 언제라도 가면 반가줄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 마지막날 새벽 어둠을 헤치고 떠나는 게스트 눈물이 살짝 났다.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떠나가는 택시를 보며 성호를 긋고 게스트 앞날에 행운을 빌어줬다. 안녕 친구! 담에 다시 만나!^^ 그리고 휴일까지 나와 애쓰시던 국장님! 진정 애국자이십니다. 한일사회문화포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