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오히려 정치적, 외교적인
관심뿐이었던 나에게 지원자 합격 통보는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다.
일본어라고는 간단한 인사말 밖에 몰랐고, 일본에 대해 드는 생각은
예민한 문제뿐이었다.
워크캠프 첫날이 시작되기 전 날에도 나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을까
고민했다.
워크캠프의 첫날,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창덕궁으로
향했다. 날씨도 무덥고 거리상 그 전날 먼저 서울에 도착했던 나는 벌써부터 많이 지친 상태였다.
OT때 만났던 팀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일본인 참가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 팀에 배정된 분은 오직 이 캠프를 위해 일본에서 오신 히로미
상이었다.
어색한 대화와 함께 다들 퀴즈를 풀기위해 창덕궁 곳곳을 둘러보았다.
퀴즈를 풀면서 우린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갔다.
우리꽃자리 펜션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특별한 지시사항이 있기 전 남자, 여자가 나뉘어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난 여기서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일본친구들에 대한 배려로 시작된 일본어대화가 내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 것이다.
당연히 한국인 참가자들과도 어색하고, 일본인 참가자들과도 어색했던 나는,더군다나 일본어라고는 전혀 알아듣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나는 위축되지 않고 저돌적으로 나를 소개하며 친해지기 위해 애썼다.
게임을 통해 우리들은 서로 더 친해지고 같은 일에 즐거워하고, 아쉬워하며 감정을 나눴다.다음날 아침이 밝고 일본의 음식인 오니기리를 만들며 조금씩 서로의 문화에 대한 실질적 교류를 이어나갔다.
그날은 비가 너무나도 억수같이 쏟아져서 일정에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일정을 소화했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는 사사로운 여담과 농담, 이야깃거리로 친밀해졌다.
계획된 스케쥴 외에도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게임을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같은 이야기에 웃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 이때부터, 닫혀있던 편견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어지는 힘든 일정 속에서 함께 자고 함께 먹고 일하고 웃으면서 우리는 다들 같은 생각과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교류하며 있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 경험한 벤치 만들기, 벽화그리기. 그리고 댄스교류와 음식 만들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니 시간은 훌쩍 마지막 날 밤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 밤 그동안의 일정에 대해 평가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큰 변화에 대해 깜짝 놀라고 말았다.
피곤함에 지쳐있던 사이에 나의 사고와 편견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져있었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편견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고마움과 친밀감 아쉬움만 가득했다.
칭찬 릴레이 시간이었다. 나는 어쩌면 나와 같은 상황이었을 히로미 언니에게 칭찬의 화살을 쏘았다.
낯선 한국어와 낯선 땅에서 대화도 힘들고 소통도 힘들었을 텐데 밝은 미소로 우리와 함께하고 노력했던 모습이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해선 역사의 상처밖에 생각 할 줄 몰랐는데, 일본에서 온, 어쩌면 일본을 대표해서 온 아름다운 일본 분들이 내게 너무나도 거대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캠프가 나를 갇힌 시야 속으로부터 틔어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분들과 우리는 모두 역시 같은 감정을 가진 ‘친구’ 들이었다. 살아온 곳과 배운 것이 달랐던 우리에게 더 이상 국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빛과 미소, 감정만으로 우린 충분히 소통하고 나눌 수 있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이다.
그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졌고, 어떻게 하면 이날의 우리처럼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로 함께 나아 갈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충격적일 만큼 훌쩍 자라있었다. 캠프 이 후의 나는 세상을 보는 시야도 굉장히 넓어졌고 이해와 소통의 폭도 훨씬 커졌다.
이번 캠프에 대한 나의 선택은 감동스러울 만큼 탁월했다.
함께했던 친구들, 언니 오빠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그 속에서 느끼고 한 뼘 더 성장한 시간이었다.
한일포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