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홀리데이로 1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외로움이라는 것을 정말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의 생활환경이 다른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과의 진실 된 교류였다고 생각된다. 친구나 아는 지인은 적지 않게 있었지만,
만나고 싶을 때 만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고, 힘들 때 보자거나 하기에는 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에
정말 친한 사이 인 것인지 아니면 문화의 차이인지 생각하는 와중에 날이 밝아 버리곤 했다.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찾기 위해 궁리하다 찾게 된 것이 봉사활동이었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었던 봉사활동 센터의 소개를 통해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을
부모님을 대신해 몇 시간 동안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몇 시간 이었지만 거기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순수함. 어릴 적 추억. 같은 봉사자들과의 유대감. 그리고 무엇보다 도움을 주러 간 자리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
그리고 나서부터 봉사에 대한 인식이 남을 도와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에서
내가 오히려 도움 받는 곳이라는 인식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2주전 나는 한국 돌아갈 부푼 마음과 한편으로는 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라는 고민 속에 살고 있었다.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지라 하고 싶은 것들이 자주 생각났다. 그것들을 노트에 적어 놨었는데,
“봉사”라는 두 단어가 눈에 띄었다. 1년간 일본어를 사용하며 살았는데 일본어와 관련 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저렇게 단어를 조금씩 바꿔가며 일본어 관련 봉사를 찾던 도 중
“한일 국제 볼런티어 워크캠프(이하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고, 부푼 마음을 추스르며 지원양식을 써내려갔다.
한국에 돌아온 후 워크캠프 참가를 희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며 칠 뒤 한국 친구들과의 오리엔테이션 만남을 시작으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의 4박5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8월 14일 오후 2시 우리는 약속한대로 창덕궁 매표소 앞에 집결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못 찾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하늘색 티셔츠를 단체로 입고
아직 오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후 두 번째 보는 사이지만,
그래도 아직 어색함이 많이 묻어있어 환한 미소로 어색함을 애써 누르며,
친구들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친해져갔다.
어느 덧 한국친구 뿐만 아니라 일본친구까지 다 도착 한 뒤, 우리는 지난 번 결성한 조별로 모였고,
창덕궁에서 미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친구 수가 한국 친구에 비해 많이 부족한 관계로 1조당 1명 혹은 2명의 일본친구가 합류하게 되었는데
우리 조는 ‘히로미‘라고 하는 히로시마에 사는 친구와 한조가 되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일본 친구들과는 달리 일본 현지에 바로 온 친구라서, 한국어가 많이 서툴렀지만,
특유의 미소와 적극성을 무기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통(通)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창덕궁에서의 미션은 생각이상으로 너무 어려웠다. 그렇지만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 새우젓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다른 조의 어설픈 방해 공작에 어울리며, 그 속의 진실을 찾아다니거나,
안내하시는 분의 도움을 받거나 간혹 조원들의 지혜를 빌려가며,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창덕궁 미션이 끝나고 중간에 저녁을 해결한 후 바로 강화도 숙소로 이동하였다.
이동하자마자 먼저 씻은 후 남자들은 먼저 나이로 서열 아닌 서열이 정해지며 금방 친해졌다.
저녁에는 자기소개 후 식사당번 미션으로 이루어져 조별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게 되었고,
그 게임을 통해서 우리는 많이 친해질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는데,
미션 후에도 그 때를 생각하며 시시덕거리다 보니 어느새 10년 지기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8월 15일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태순이가 밤새도록 해준 유럽 여행 이야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미션에서 정한 아침 식사당번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거운 눈커풀을 치켜세우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미 먼저 일어난 여성조원들이 반갑게 아침인사를 건넸고, 우린 특명 주먹밥 레인져가 결성된다.
과연 사람이 먹을 것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주하의 뜻밖의 된장국 솜씨와 여성 조원들의 화려한 칼솜씨.
그리고 막내들의 신속한 정리능력과 유군과 히로미상의 일본 현지 주먹밥 기술이 어우러져,
주먹밥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우리는 주먹밥을 맛있게 먹고 산마을 고등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이 날의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벤치 만들기 볼런티어 두 번째는 함께 배워보는 강남스타일 댄스 강좌였다.
먼저 벤치 만들기 볼런티어는 원래 벽화와 동시에 진행 될 계획이었지만,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실내에서만 작업을 할 수 있어,
학교 측에서 제공해 준 비닐하우스에서 벤치 만들기만 진행 되었다.
강화도에서 모르는 분이 없으시다는 몽피 선생님과 오늘 선생님의 지도하에 여성 참가자들은 벤치가 될 나무들에 색을 입혔고
남성 참가자들은 모양새를 만들고 글씨를 팠다. 이 땅에 남자로 태어나서 군대도 다녀왔지만,
남자로써 어쩌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은 도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제대로 사용법 하나 아는 것이 없었는데,
벤치를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서툴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가며, 해 보니 점점 속도도 붙고 자신감도 생기고
나중에 써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신도 나고 흥미도 생겼다.
어느 정도 벤치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곧 바로 양도 초등학교로 이동하여,
이 곳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계시던 댄스 선생님과 함께 강남스타일 댄스를 배웠다.
이 곡을 부르는 싸이라는 가수가 몸집도 있고, 꽤 눈에 익은 춤이다 보니 다른 춤에 비해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 보다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동영상을 보며 확인 한 건데,
싸이는 이 춤 다 안 춘다. 백댄서가 춘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가 추던 웃기다. 재미있다.
보는 사람이 즐거워하면 추는 사람도 즐겁다. 결론적으로 많이 미숙하게 추고 어려웠지만, 모두 즐거웠다.
그걸로 이번 댄스 강좌는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고, 지금 돌아봐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최근 페이스 북에 올라온 당시 찍은 사진도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예비역이고 나이 많은 내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 앞에서 서투른 삽질과 곡갱이질에 비웃음을 살지언정 적어도 서툴지만,
저 나이에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하고 인정은 받지 않았을까, 이도 저도 아닌 그때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어리석어 보여서
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는 것은 비밀. 아무튼 그런 마음을 뒤로 하고 이미 지나간 일 어절 수 없는 것이고
남은 일정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내게 주어진 임무 바베큐.
우리는 펜션 사장님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상추 따기 조. 테이블 셋팅 조. 바비큐 굽기 조로 나누어 움직였고,
맛있는 고기를 굽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덜 익은 고기가 태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평 없이 맛있게 먹어준 친구들이 고맙고, 모기가 많아 먼저 일어난다고 다들 일어나던데,
핑계꺼리가 되어준 모기에게도 고맙다.
저녁을 먹은 뒤 10시쯤 모여 워크캠프를 하게 되면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그리고 서로에게 고마웠던 점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한사람 씩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말 하였는데
프랑스에서 온 친구인 토마와 일본에서 온 친구인 히로미는 끝내 말을 못 잊고 눈물을 흘렸는데,
그 친구들의 지금의 기분이 내가 일본에서 느꼈던 우울함과 소통을 간절히 원했던 그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마지막에 일본 친구들의 준비한 ‘만나고 싶었다’는 율동도 너무 기억에 남는다.
다들 서툴지만, 진심이 너무 보이기에 어떤 공연보다도 멋지고 가슴 뜨거웠다.
너무 고마워서 몸 둘 바도 모르겠고 강남스타일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분위기가 허락해 주지 않았다.
서로가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내가 몰랐던 나의 장점들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는 점과
서로가 서로였기에 즐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자리였다.
8월 17일 마지막 날. 다들 마피아라는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아침 해와 굿나잇 인사하고,
토막잠으로 하루를 버틴 꼴이라 모습들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모두 헤어질 테니 잠잘 시간도 아깝다며 조금이라도 수다를 떨겠다며, 몸부림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젊은 혈기와 그들의 의지를 느끼며, 눈물이 찔끔 났는데 알고 보니 하품의 눈물.
우리는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로 강화역사 박물관으로 이동 후 오래전으로 돌아가 강화도의 역사와 발자취를 느꼈다.
강화도에 처음 와 본 일본 친구들은 전시 되어 있는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에 신기해했고,
일부 한국 한생들은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을 만족시켜 주었다.
또, 박물관 내 직원 한분이 우리를 따라다니시며, 여러 가지 깊은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너무 많은 양의 이야기를 해주신 것에 비해, 머리에 남은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아 조금 아쉽다.
박물관을 다 관람하고 근처에 있는 부근리 고인돌 앞으로 이동했다.
관람 후 단체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이 때 찍은 사진이 많은 친구들의 가슴속에 남은 것인지
다들 카카오톡 메인화면으로 많이 쓰고 있다는 후문.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헤어질 장소인 서울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서로 어젯밤 다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히로미상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성실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정도의 한국말 밖에 하지 못했지만, 곧잘 듣고 따라하더니,
마지막 날에는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일본사람의 특유 발음인 받침 흘러내리기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수했다. 이야기가 무르익다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내려져 오고 있는 한일 관계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금 눈물이 날 뻔 했다.
어느 덧 신촌, 시청, 서울역에 차례로 도착하며
4일간의 일정은 모두 막을 내리고 친구들도 모두 자신의 원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우리의 워크캠프는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 약속이라도 한 듯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서 만나며,
지난 사진을 들춰보며 희희낙락 거리기도 하고, 아직도 SNS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있다.
일본사람, 한국사람 편견 없이 하나의 똑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었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와 내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일깨워 준
촉촉한 4일의 나날들을 통해 나는 언젠가 또 다른 만남도 이번 만남처럼 행복할 수 있기를 기다리며 이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