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교류/ 연지윤(이화여대 국제학과)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4학년 연지윤이라고 합니다.
2011년도의 겨울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허겁지겁 도쿄 하네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다시 2012년도 봄학기 개강에 맞추어 귀국한 후, 정신 없이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도쿄에서 보냈던 3개월의 시간이 지난밤의 꿈처럼 느껴집니다.
꿈 속에서 열심히 헤매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아, 꿈이었네” 하고 느끼는 그리움 섞인 아쉬움이 지난 인턴생활을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이라고나 할까요.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일본인이 직접 요리를 하는 식당에 가봤는데, 그때 처음 먹어본 가츠동(돈까스덮밥)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 동안 일식이라고 하면 우동, 초밥, 모밀국수가 다였는데, 바싹 튀겨진 튀김 옷을 입힌 두툼한 돼지고기와 함께 어우러진 부드러운 계란과 양파의 조화, 그리고 짭짤한 소스까지! 그 가츠동이 계기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그렇게 일본 음악을 듣고 일본 드라마를 보게 되었으며,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일본 문화는 저에게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일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일본인들도 한국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들인 한글, 한국의 명절, 교육, 대중문화 등이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문화”로서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어쩌다가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의 인턴쉽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본에서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최전선에 서있는 한국문화원에서 “한류 그 이상의 것”에 대해 배우고 싶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났던 인턴 생활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우선, 저는 4층 사무실에 배정을 받았는데, 직접 일을 찾으러 다니지 않으면 기본적으로는 “대기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아무 일거리도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주어진 일도 신문스크랩, 태권도 도복 개기, 한류 잡지 정리하기, 우편 보내기, 이벤트 공지 번역하기 등의 소위 말하는 “잡일”뿐이어서 하루하루 불만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한국문화원 행사에 대해 각 기관에 알리기 위해 전단지들을 정리해서 서류봉투에 넣고 있던 중, 한 직원 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이렇게 서류봉투에 테이프 붙이는 잡일이어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으니까 이를 통해 무언가 배울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일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점점 일을 하다 보니 작은 일에서도 그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스크랩을 하며 일본매체들이 얼마나 한국에 대해서 자주 다루고 있는지, 산더미 같은 태권도 도복을 보며 태권도 체험 교실에 매주 토요일 많은 어린이들이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는 것, 70호를 넘긴 한류잡지를 보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한국문화가 매달 일본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었던 점 등. 그 동안 “한류”라는 단어를 보면 외국인들이 우리문화를 사랑해주고 있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뒤에는 한국문화원을 포함한 많은 기관과 매체들이 다양한 레벨에서 우리문화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문화원에서 석 달 동안 소일거리만 하다가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있는 동안에는 설날 풍경전, 한국어 말하기 대회, K-POP 스타 사진전, 한국드라마 시사회, 한류 구르메(Gourmet) 페스티벌 등 큰 행사들이 있었는데,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문화원 견학을 보조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한국문화원에서는 수시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견학회를 열고 있어 인턴들도 참여할 때가 있는데, 제가 보조하게 된 날은 신주쿠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32명의 6학년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침 10시 반으로 예정된 견학이었는데, 학생들이 너무 들떠서였는지 30분 일찍 도착해 직원회의 중이었던 문화원 사무실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견학 행사에는 한국 소개 영상 시청, 한복 시착, 하늘정원과 사랑방 체험, 질의응답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두 시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질문하며 재잘재잘 떠들던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만나기 전에는 소녀시대와 카라 등 한류스타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보다 김치, 한국 대사관, 한국 초등학교 교육 등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아서 저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견학이 끝나고 일주일 후, 아이들이 한 장씩 손으로 쓴 감사편지와 예쁜 그림이 문화원으로 도착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조금이라고 더 많이 배우고 가게 되어서 내심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설날 풍경전 설문지와 가을에 있는 K-POP 페스티벌 신청서 통계내기입니다. 이틀 동안 열렸던 설날 풍경전에서 첫날은 탁본 체험 행사, 둘째날은 서예 쓰기 체험과 전통놀이 체험을 맡았었는데, 이 행사들이 재밌었다 하고 쓰여진 설문지들을 보며 행사를 준비하며 느꼈던 고통(?)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K-POP 페스티벌은 시기상 참가할 수가 없었지만, 일본의 각 지역에서 날아온 몇 천 통의 신청서를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많은 신청서들이 한글로 쓰여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일본어 신청서인데도 굳이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을 참가자들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있는 동안 추운 날씨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지진,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 등으로 마음이 편하기만 했다고도 할 수는 없지만, 다시 돌아보니 너무 재미있는 아기자기한 추억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온 인턴 학생들끼리, 12시 땡 치면 다같이 지갑을 들고 일어나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하고 웃고 떠들기도 하고,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문화원 페이스북에 무슨 글을 쓸지 고민했던 페이스북 회의도 다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실,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라고 해서 정말 “큰 일”을 해내고 올 거라고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그보다 더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것들을 배우고 돌아온 거 같아 즐거웠던 경험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저 역시 제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한국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지난 3개월간의 행복하고 잔잔한 추억을 선물해 준 외교부 비영리단체 한일포럼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