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는 끝이 없다. 도전하라! / 김민정 (백석대학교)
21살, 대학교 3학년 1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교에서의 책을 통한 간접적인 수업이 아닌 보다 활동적이고 생생하게 사회 현장을 느끼며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본으로 떠나서 공부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학부 게시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다.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에 미리 구상해 두었던 계획에 의하면 2학년 2학기를 마치는 해에 일본어능력시험 2급 자격증을 따고, 3학년이 되면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 일본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던 중, “대학생글로벌현장학습”이라는 문구가 내 눈에 띄었고,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에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사카에 도착하여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잠시, 인턴으로 첫 출근을 앞둔 예비 사회인으로서 심장이 콩닥콩닥 긴장되는 출근길에 오르게 되었다. 자주 입어 보지 않아 낯선 정장을 입은 모습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4개월간 같이 일하게 될 직장 상사들에 대한 힘찬 인사를 시작으로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날은 회사의 사무실 분위기를 둘러보며 내가 일하게 될 한국문화원에서는 무엇에 대한 일을 하는가에 대해 이리 저리 메모를 하며 견학을 하였다. 아침 회의에 같이 동참하라는 원장님의 말씀에 어리둥절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어로 진행되어지는 회의를 들으며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메모하며 회의 내용에 귀 기울인 것이 인턴으로서 처음 주어진 임무였다.
한국문화원 내에서는 한국어 사용은 금지이며, 일본어로만 업무를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매일 매일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원에는 한국문화를 알고자하는 일본인들이 주로 방문하였는데 이러한 일본인들과 대화를 하며 우리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정보를 전달해 주는 과정에서 일본어 표현이 나날이 발전하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서적 도서실, 한국어 강좌, 한국 요리 교실, 국악 연주회 등 다양한 분야를 맡고 있기 때문에 4개월간 평생 해볼 수 없는 여러 분야의 업무를 해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오사카의 여름은 서울의 한 여름을 능가하는 푹푹 찌는 더위로 내 생애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었다. 문화원에서는 이런 오사카의 무더위를 식혀줄 만한 규모가 큰 중요한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포스터 제작에서부터 티켓 예약 전화 상담, 포스터를 보낼 봉투 제작, 콘서트 사진 촬영, 콘서트 리셉션 준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이 필요한 이벤트였다.
한국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이벤트 중 가장 중점을 두고 진행하는 행사여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른 무엇보다 더 열심히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지만 값진 기억으로 남는 것이 바로 티켓 예약 전화 상담 업무였다.
주어진 전화 멘트와 함께 전화를 걸어온 손님에 대한 정중한 경어를 사용하여 콘서트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 째로, 손님이 원하는 좌석의 위치와 가격을 외우는 것은 기본으로 티켓을 예매 할 수 있는 사이트가 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예매 사이트에 대한 정보 및 콘서트를 하는 예술인의 정보까지 고루 섭렵하고 있지 않으면 전화 상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콘서트 예약 상담 업무를 할 때에는 출퇴근길에 콘서트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는 종이를 손에 쥐고 달달달 외우며 일본어 발음도 더 정확하게 연습해 보았다. 콘서트가 열리는 전 날까지 직원 동료들과 협동하여 성황리에 이벤트를 마친 뒤, 밤 12시가 넘는 시간에 퇴근을 하여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쓰며,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지난 2년간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 일본어능력시험 2급 자격증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을 때, 그 때와는 또 다른 보람을 느끼며, 처음으로 큰 프로젝트에 나의 땀과 노력이 들어갔다는 생각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아직은 세상 밖 울타리를 벗어나오기에는 이른 어린양과 같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소심한 자세로 나의 미래를 바라보던 과거의 나 자신을 비웃으며 앞으로의 나는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끊임없는 도전을 하며 전진해 나가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국의 부산, 일본의 오사카!
이번 해외 인턴십을 계기로 첫 해외 경험을 쌓게 된 나는 오사카로 떠나는 여정에 들뜨는 마음을 안고 사전에 교수님과 지인들을 통해 오사카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오사카로 떠나게 되었다는 말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오사카 방언이었다.
학교 수업은 일본 표준어를 기준으로 배우기 때문에 일본의 방언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방언을 한마디도 못 하는 내가 오사카 사람들과 회화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다행히도 오사카 사람들은 방언을 사용하지만 표준어를 사용할 줄도 알았기 때문에 나의 일본어를 알아듣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오사카 방언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들의 말을 내가 전부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회화를 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지만, 회사에서 사귀게 된 오사카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는 오사카 방언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표준어와 전혀 다른 방언에 당황하여 회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 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틈틈이 오사카 방언을 배우며 표준어와 전혀 다른 발음으로 표현되어 지는 오사카 방언을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문득 한국의 부산을 떠올리게 되었다.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말만 써온 서울토박이인 내가 부산 사람들과 만나 부산사투리로 대화를 하다보면 한국말이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경에서 쓰이는 표준어와 오사카 방언 중 발음이 전혀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3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인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오사카 방언을 연습해나갔다.
이번 해외 인턴십 활동을 통해 일본어를 전공하는 전공자로서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만남으로써 세상을 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문득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나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전공과목으로써 나에게 잘 맞는지 앞으로 일본어 공부를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해외인턴이라는 좋은 기회를 발견하여 앞으로의 미래와 현재의 나의 실력 그리고 일본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본 문화 체험에 중점을 두어 현장학습을 실시하였지만 점차 현장학습 활동을 통해 사회생활 경험 또한 할 수 있었다. 일을 하는 직장이라는 곳은 한국과 일본이라고 하여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모두 사람과 사람이 일하는 곳이며,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일하는 곳이다. 단지 내가 해외인턴을 실시한 곳은 모국어를 일본어로 사용하는 일본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회사라는 곳은 각자의 개인의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많은 과제를 제시한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자신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여 상사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 처음에 인턴으로서 출근할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직원 분들께 많은 조언을 구했다.
전화를 받는 일 또한 상대편의 기분이나 표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지, 내가 예의를 갖추고 전화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긴장하면서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비단 일본어로 전화업무를 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전화를 받는 업무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으로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조금 벗어나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되었다.
사실 사무직에 관한 업무를 4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직원 모두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맡은 바 일을 하며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능률보다 더 중요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었다. 감정적인 면보다는 이성적으로 일과 직면하며, 사람을 대해야 하고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으로 회사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결같이 자신의 리듬을 찾아 일을 하는 것이 사회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 둘 다 사람을 상대로 일을 하는 것으로 이번 해외 인턴십 활동을 통해 그런 자세를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보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 나의 꿈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역사의 꿈을 갖고 일본어를 공부해 온 그 동안의 시간을 되새기는 것과 동시에 인턴으로 번역과 통역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 나의 진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막연하게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번 해외 인턴 활동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의 장래를 설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통역의 매력과 동시통역을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깨달았다.
대학교 생활 동안 평점에 맞추어 성적에 급급해하며 공부를 해왔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물론 코앞으로 다가오는 시험과 매주 주어지는 과제 또한 중요하지만 먼 미래를 보면서 공부하는 것이 정말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비단 성적을 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질적인 면을 더욱 향상시키며, 나아가 나의 전공분야에 있어서 전문적으로 능통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통역을 함에 있어서 언어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 대한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게 뒷받침이 되어야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통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