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지진> 2차피해 확산..日 구조적 문제 노출

 
2011년 03월 21일 (월) 15:26  연합뉴스

<日대지진> 2차피해 확산..日 구조적 문제 노출

고령화·지역소외·매뉴얼 집착·리더십 미비 등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인한 2차 피해가 확산되면서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이 새삼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21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실종자 수가 2만명을 넘어서고 35만명에 달하는 이재민들에 대한 신속한 구호작업이 지연되면서 추위와 의료설비 미비 등 2차 피해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자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집중 부각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일본의 고질병으로 꼽혀온 노령화와 지방 소외 현상이다.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로 숨지거나 실종된 2만여명 중 대부분이 65세 이상의 고령자인 것으로 일본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노약자들의 경우 지진이나 쓰나미같은 위급상황시 신속한 대처가 어려울 뿐 아니라 평상시 실시되는 재난훈련에도 거동불편 등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재난상황에 특히 취약하다.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이번 대지진에서도 예외는 아니여서 대부분의 노인들이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상당수는 병원이나 요양소 등지에 입원 중이거나 치료 중인 상태여서 대피 자체가 어려웠다. 

이와테(岩手)현이나 후쿠시마(福島)현 내의 학교 체육관 등지에 대피해있는 이재민 가운데 추위나 의료설비 미비 등의 2차 피해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도 이재민 가운데 고령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고령의 이재민들은 대부분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고질병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조금만 의료지원이 끊기거나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면 당장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재 일본은 전체 인구의 25% 가량이 65세 이상의 고령자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해 있으며 특히 이번에 피해가 집중된 동북부 지역은 고령인구의 비율이 더 높아 약 30%에 달하는 인구가 고령자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령자들은 피해도 피해지만 향후 진행될 재건작업에 대한 의지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북동부 해안 지역인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에서 이발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 이마카와 구니오(75) 씨는 "젊은 사람이라면 뭔가 살아날 방도가 있겠지 하며 희망을 갖겠지만 나는 너무 늙었고 다리도 성치 않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이제 틀렸다"고 말했다. 

동북부 지역의 고령화 비율이 특히 높은 것은 일본의 뿌리깊은 지방 소외 현상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농업이나 어업 위주인 지방 도시의 경우 젊은층의 이탈 현상이 심해 공동화(空洞化)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은퇴 어부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통해 지역 경제의 쇠락을 간신히 지탱해 왔으나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도쿄(東京)나 오사카(大阪) 등 대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을 붙잡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지역 소외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왔으나 워낙 구조적인 문제이다 보니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전 세계를 방사능 공포로 몰아넣었던 후쿠시마 원전도 실은 정부 입장에서 보면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의 일환이자 지역주민 입장에서 보면 꽤 부가가치가 높은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경제를 먹여살리는 효자였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진 만큼 이 지역 경제가 받는 타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재난대처 상황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능력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관료를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해온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에 대한 관료사회의 비협조와 적개심이 이번 재난상황에서의 부실한 대처로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재민들에 대한 신속한 구호를 하지 못해 2차 피해에 따른 사망자가 속출한 것은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절차 문화'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과도할 정도로 매뉴얼(manual)에 집착하는 일본식 문화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재난이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대지진처럼 전대미문의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선조치 후보고' 식의 과감하고 신속한 대처를 할 수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성 수석연구원은 "이번 일본의 대지진 사태와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들을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며 "간 총리가 관료사회를 개혁대상으로 간주하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 사태를 더 키웠다"고 말했다. 

passion@yna.co.kr